2024년 현재 노자 도덕경을 '부와 풍요의 철학: 노자의 도덕경'이라는 제목으로 연재 번역하고 있다. 도덕경은 노자의 말씀을 책으로 엮은 책으로, 제목 그대로 도와 덕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노자는 고대 중국 춘추시대의 인물로 도교의 창시자 중 한 명이자 핵심 인물로 존경을 받아 왔다. 앞으로 책으로 출판할 계획이다.
부와 풍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것
부와 풍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것. 인간 세상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것. 그렇지만 단 한 번도 골고루 나누어진 적 없던 것. 불평등의 근원이자 갈등의 시초. 그래서 노자는 말한다. 욕심을 버리고 서로 빼앗고자 다투지 말며 서로를 보듬어주고 안아주라고. 이미 이 세상은 부와 풍요로 가득 차 있는 곳이니, 제발 그만하라고. 멈추라고. 이것이 노자의 메시지이자 도덕경의 주제이다.
노자는 늘 욕심을 버리고 소박한 삶을 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세상 아닌가. 의문이 든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이렇게 살면 삶의 저 구석탱이로 밀려나는 건 아닐까. 종교인도 아닌데 욕심 없이 살 수 있을까. 소박한 삶을 살라는데, 소박한 삶도 돈이 있어야 가능한 것 아닌가. 아니면 원시 사회가 가장 좋았다는 뜻인가. 다시 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노자는 왜 대체 이런 이야기를, 이런 메시지를 남겼을까. 단순한 삶을 사는 것도 좋고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것도 좋으나, 그렇게만 보기에는 노자의 사상이 너무나 지엽적이고, 현대 사회에 적용하기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고민했다. 노자의 생각을 오늘날 현실에 끌어올 방법이 없을까 하고. 아니면 숨겨놓은 비밀이 있나 하고.
그렇게 찾아낸 것이 바로, 부와 풍요의 철학이다. 노자가 욕망을 줄이고 순박한 마음으로 살라고 한 목적은 궁극적으로 부와 풍요를 누리는 데 있다. 노자는 한 가지 전제를 하고 있다. 우리 사는 세상은 이미 부와 풍요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욕심 부리지 않고 더 가지려 다투지 않는다면 충분히 먹고 살만하다고 말한다.
이미 부와 풍요로 가득찬 우리 삶
가난해지라고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철학자는 없다. 물론 그렇게 말은 하지만 그 목적은 결국 더 나은 삶, 더 좋은 삶을 향한다. 소크라테스도 그랬고 플라톤도 그랬고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랬다. 당시에 수많은 소피스트들이 등장한 것도 그곳이 부와 풍요가 넘첬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과 문학이 발달하고 민주주의도 생겨났다.
종교라 다를까. 불교가 번성했던 곳은 항상 도시와 경제가 발달했고 부유한 상인들로 넘쳐났다. 당연히 커다란 제국도 있었다. 거대한 종교유적을 만들기 위해 흔쾌히 보시를 할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다르지 않다. ‘마음이 가난한 자 복이 있나니’라는 성경의 구절 역시 ‘복됨’을 그 목적으로 한다. 게다가 기독교를 등에 업은 로마 역시 승승장구했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그렇다. 인류는 지속적으로 부를 증대시켜 왔다. 현대 사회의 결혼식과 같은 풍경은 이전 시대에는 귀족이나 가능했었다. 물론 현대 사회의 귀족인 부자들은 황제마냥 더 많은 돈을 들여 더 멋들어진 결혼식을 한다. 그만큼 인류의 전체적인 부는 과거 수백 년 전과 비교해 어마어마하게 증대했다. 다만, 그만큼 빈부격차도 증대했다.
노자의 시대라고 다를까. 그 당시에도 왕족이 있었고 귀족이 있었고 부유한 상인이나 지주가 있었다. 그들이 자신이 가진 부를 마음껏 나누었을까. 그런 사람도 있었겠지만 대다수는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에도 그 부를 나누면 모든 사람이 충분히 먹고 살만했을 것이다. 인간이 그렇게 하지 않았을 뿐, 자연이 처음부터 빈부를 나누진 않았다.
노자는 가난한 사람이 아니었다. 가난한 이가 어떻게 글을 배웠겠는가. 글을 배우는 이는 곧 기득권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글을 배운다는 것은 곧 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노자는 성공한 사람이다. 욕망을 줄이고 다툼을 멈추라 한 것은 성인, 즉 앞으로 나라를 이끌 지도자를 향한 외침이었다. 너네들이 잘해야 다 잘 것 아니냐! 그런 의미이다.
모든 존재를 이롭게 하다
현대 사회는 시민들이 이끌어가는 시대이다. 시민들의 부가 곧 국가의 부이다. 흔히 말하는 중산층. 먹고 살기에 큰 부족함이 없고, 상식이 통하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려 하며, 나눌 줄 알고 베풀줄 아는 이들이 어우러져 있는 집단이 곧 중산층이다. 이런 중산층이 두터워지고 이들에 의해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 그래야 부와 풍요가 가득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정의와 공정과 상식을 외치는 이유는 그것이 결국 부의 분배와 관련이 있고, 그 부의 분배는 곧 한 인간의 풍요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롤스의 정의론이 계속 회자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부와 풍요는 단지 물질적으로 넘쳐나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에 상응하는 정신적 가치가 뒷받침되어 주어야 한다.
나누고자 한다면 독차지 하고자 서로 빼앗지만 않는다면 인간은 그 부와 풍요를 충분히 누릴 수 있다. 노자가 물처럼 살라 한 것은, 무위를 행해야 한다 말한 것은 결국, 개개인이 그런 자세로 삶을 살아야만 이땅에 주어진, 개개인에게 주어진 부와 풍요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의도에서이다. 그것이 곧 모든 존재를 이롭게 하려는 노자의 마음이다.
영어 버전
부와 풍요의 철학, 노자 도덕경 1-81장 (모음)
관련 도서 (내 책)
2023 세종도서 선정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는 철학>(믹스커피)
살림지식총서591 <도가>(살림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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