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리뷰) 끝없이 들여다보다_사울레이터 사진전_피크닉

늘 늦다. 하지만 늦은 만큼 더 깊다.

거울과 유리에 비친 사람들, 눈 오는 겨울의 풍경, 빗방울 맺힌 뿌연 유리와 그 너머로 보이는 흐릿한 세상, 그리고 그 속을 지나치는 사람들, 이제는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누구나 한번쯤 보았을 사진들의 원형. 사울 레이터의 사진들이다.

때는 1960년대, 장소는 뉴욕. 호황을 누리던 미국의 세계적인 도시에서 그는 연신 셔트를 누르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큰 성공을 거두리라고는 예상치 못한 채. 사울 레이터의 말을 들어보면 실제 그가 ‘성공’을 바라고 사진을 찍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나는 대단한 철학은 없다. 카메라가 있을 뿐
– 사울 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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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마음을 누가 알겠냐마는, 그의 사진들을 들여다보면 꽤 긴 호흡을 느낄 수 있다. 긴 호흡은 기다림과 함께한다. 사진을 ‘기다림의 미학’이라 부르는 것처럼, 사울 레이터는 끝내주는 사진을 건지기 위해서라기보다 ‘마냥’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것을 사진으로 기록했던 것 같다.

그에겐 고독한 느낌이 있다. 그리고 세상을 관찰하는 느낌이 있다. 철학적 의미를 담은 있어보이는 말로 ‘관조’. 전시에도 ‘관조’라는 말을 사용했으나, ‘관조’보다는 관찰이 더 적절할 듯하다.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에 즐거움을 느꼈던 거란 혼자만의 추측.

사실, 무언가를 관찰하는 건 타고나는 성향이기도 하다. 사울 레이터 사진을 보고 있자면 나랑 비슷하단 느낌을 받는다. 어릴 때부터 난 늘 뒤에 앉는 걸 선호했다. 뒤에 앉아 세상을 조망하듯 있어야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잊히기를, 별 거 아닌 사람으로 남기를 바랐다.
– 사울 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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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관찰한다는 건 상대적으로 여유롭거나 상대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져야 가능하다. 세상에 속해 있으면 마음이 바쁠 수밖에 없다. 약간 비켜 서 있듯 있어야 세상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아마 모두가 그럴 것이다. 사진이든 미술이든 전시를 관람하는 것은 작가가 바라본 세상의 낯섬을 느껴보기 위해서다. 사울 레이터의 사진이 인기 있는 이유는 사람과 사물에 대한 낯선 감각을 경험하게 해주는 데 있다고 본다.

약간 더 오랜 시간 관찰한다면 그것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 고요히 바라보아야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보이는 것들을 더 자세히 바라볼 수 있다. 고양이의 마음과 비슷하다. 가만히, 오래도록, 접근하지 않은 채, 그러나 모든 신경을 집중한 채 바라보는 그 시선, 그리고 그 느낌.

사울 레이터가 자신의 누이 동생을 모델로 삼은 것도 이런 성향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동생이어서가 아니라 사울 레이터를 가장 잘 알고, 사울 레이터가 가장 편해하는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성향이라면 어느 정도 통하는 사람이어야 편할 수 있을 테니까.

특히, 겨울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 눈 오는 겨울을 좋아한다. 세찬 바람이 부는 눈보라가 만드는 풍경은 역으로 마음속에 잔잔함을 안기는 느낌이다. 물론 매일 세찬 눈보라가 불어온다면 아마 비명을 지르거나 욕을 해댔겠지만.


전시가 다 끝난 뒤에 올리는 늦은 리뷰이다. 그래도 본 사람은 많을 테니,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재미로 삼기를 바라며. 혹시 이 늦은 리뷰를 또 보고 싶다면 다음 편을 기다려 주길 바란다. (아래 유튜브에서 사울 레이터의 사진을 조금 더 가까이 볼 수 있다.)


사울 레이터 전시가 성황을 이루면서 그의 책들도 번역 출간되었다.


아래는 사울 레이터 재단 홈페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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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리뷰) 끝없이 들여다보다_사울레이터 사진전_피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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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리뷰) 끝없이 들여다보다_사울레이터 사진전_피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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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닉'에서 열렸던 사울레이터 사진전의 '늦은 리뷰'이다. 늘 늦다. 하지만 늦은 만큼 더 깊다. 거울과 유리에 비친 사람들, 눈 오는 겨울의 풍경, 빗방울 맺힌 뿌연 유리와 그 너머로 보이는 흐릿한 세상, 그리고 그 속을 지나치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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