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깊이 있게 – 리뷰&deep]
전시를 다녀와 쓰는 조금 깊이 보는 리뷰이다.
예술이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것이죠. 예술에서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이미 주위에 있는 것을 은유나 상징적으로 다루는 것이죠. 산문이 아닌 시라는 말입니다. 현대의 재앙이라면 바로 이 시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죠.
–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덧붙임 예술에 대한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태도를 알 수 있는 말이다. 하나는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일상의 소재를 활용하면서도 그것이 갖는 느낌을 새롭게 재현하였다. 다른 하나는 예술이 시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설명하기보다는 느끼기를 바란다. 시와 미술의 공통점은 바로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먼저 받아들인다는 데 있다.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없으니 곧 재앙이다. 낭만이 사라진 세상!
회화의 죽음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회화의 죽음 뒤에 이루어진 개념 미술을 계승한 예술가 중 하나이다. 어려운 말이 두 개 나온다. 하나는 ‘회화의 죽음’이다. 이는 회화가 갖는 예술적 의미가 사라졌다는 의미이다. 의아할 수 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회화가 존재하는데 왜 사라졌단 말일까. 20세기 초에는 그랬다. 사진과 영화가 등장하며 ‘사물의 재현’이라는 회화 본연의 의미가 퇴색되었다.
사진은 복제 가능하다. 원본인 필름만 있다면 똑같은 이미지를 똑같이 찍어낼 수 있고, 약간의 보정을 거친다면 전혀 다른 이미지로 변화할 수도 있다. 캔버스 하나에 한 작품을 그리는 회화와는 다르다. 더욱이 회화는 사진처럼 똑같은 그림을 똑같이 그릴 수는 없다. 한편, 영상은 3차원에 기반한다. 입체적이고 움직임이 있다. 하지만 회화는 움직임이 없다. 무엇보다 평면이다.
20세기 예술가들은 이런 것들을 넘어서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것이 곧 ‘현대 미술’이다. 어떤 이들은 곧이어 얘기할 개념미술을 했고, 어떤 이들은 팝아트를 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미디어아트를 했고 어떤 이들은 설치미술을 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을 다 해보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그는 전통적 기법의 회화가 갖는 한계들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작품의 대상을 화폭 한가득 담아내거나 캔버스 모서리에 위치시키거나 아주 크게 확대하는 등의 방식이 그러하다. 또한 대상들을 똑같은 크기로 배치하거나 겹쳐서 배치하는 등의 구성을 통해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냈다. 전시에서는 회화뿐 아니라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설치미술과 디지털미디어아트를 만날 수 있다.


개념미술
<참나무 an oak tree>((마이클 크레이크 공식 홈페이지)
한편, 개념미술이란 무엇일까. 말 그대로 ‘개념’을 미술의 소재 또는 주제로 이용한 것이다.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가 마르셸 뒤샹의 <샘>이다. 많은 이들이 알 고 있듯 소변기를 떡하니 설치하고 소변기에다 그것의 제작사 이름과 작품의 제작 년도인 ‘R.mutt 1917’을 적어놓은 작품이다. 기성제품인 소변기에 이러한 글자 하나를 얹은 이 작품은 미술사를 바꾼 혁명적 시도가 되었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참나무 an oak tree>(1975)라는 작품(아래 1 링크)으로 마르셀 뒤샹이 한 것과 같은 이슈를 몰고 온다. 벽면에 선반을 설치하고 그곳에 물 한 잔을 올려둔 후, 이것을 ‘참나무’라고 이름지었다. 그렇다. 마이클 크리에그 마틴이 물을 ‘참나무’로 부른 순간 물은 참나무로 바뀌었다. 말장난 같아 보이지만 이것이 ‘개념미술’이다. [여기에 대해 추후 한 편의 글을 쓸 예정이다.]
이처럼 개념미술이란 개념, 다시 말해 컨셉 자체가 예술의 주제 또는 소재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예술’이라 믿는 예술적 행위 또는 작품 그 자체보다 이를 위해 머릿속에 떠올린 관념(생각)이나 작품의 제작 과정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가리킨다다. 소변기는 작품이 아니지만 ‘소변기를 설치하겠다’는 생각과 ‘소변기에 적은 글자들’이 바로 ‘예술 작품’이 된다.
물론 여전히 어려울 수 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아, 그랬어?’ 하고 넘어가면 어떤가. 한 가지만 기억한다면, ‘이미지가 아닌 개념’이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 했는지 생각해 본다면 그것이 그대로 그의 개념미술이 될 테니까 말이다. 이런 작은 물음들이 예술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기도 하다.
항상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모든 사물들은 우리가 미처 발견해 내고 그 가치를 평가하지 않는 너무나 평범하고 친근한 것들로, 나는 이들이 좀 더 명확한 것들로서 사용되기를 희망한다. 너무나 평범한 이 소재들을 이미지적인 언어로서 사용하고자 하나, 어떤 소비적인 관점에서 이들을 바라보지 않으며 디자인적인 관점은 더더욱 아니다. 내가 만들어 내는 정확한 관점은, 이들이 우리가 만들어 내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사물이며 또한 그들이 가장 우리 자신을 잘 반영해 준다는 사실이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덧붙임 이런 점에서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여전히 개념미술을 하는 작가이다. 그가 그려내는 사물들은 현대인에게 정말로 익숙한 것들이지만 그것이 주는 의미는 감상자 개개인에게 전혀 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누구나 그것이 핸드폰인 줄 알고, 축구공인 줄 알며, 의자인 줄 알지만, 감상자 개개인이 갖는 인식과 경험이 지극히 개인적이기 때문이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예술적 의도는 여기에 있다. 사람들이 익숙한 사물들을 낯설게 받아들이기 위한 그의 의도(아이디어) 말이다 .
독특한 작업 방식
특히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스마트폰, 맥북(노트북), 공, 가방, 커피컵 등의 사물들을 미술의 소재(오브제)로 이용했기 때문에 친근감이 있고, 그래서 관람객에게 더욱 효과적인 감흥을 던져줄 수 있다. 작가는 이런 오브제들을 다양하게 배치하고 이를 단순한 선 또는 화려한 색감으로 표현하여 인간이 사물에 대해 갖는 생각이나 인상에 대해 다시 한 번 느끼기를 시도한다.
작업 방식을 보면, 까맣게 칠한 알루미늄판(이것이 캔버스다) 위에 컴퓨터로 미리 작업한 작품을 프로젝트로 쏜다. 그후 작품의 외곽을 까만 테이프로 붙인 후 붓 대신 작은 롤러로 아크릴 물감을 칠하며(색깔 역시 컴퓨터로 정교하게 고른다) 작품을 완성해 나간다. 작품을 완성한 후 테이프를 떼면 까만 윤곽선이 생겨나는데, 이것이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회화가 갖는 ‘시그니처’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가장 재미난 장르는 조각이 아닌가 싶다. 철제 조각인 이 작품들은 드로잉처럼 굵은 선을 밝은 색감으로 칠했는데, 그의 회화 작품을 그대로 조각으로 옮긴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그 크기가 집채만큼 거대하다. 거인의 포크마냥. ‘걸리버의 여행’마냥. 특히 야외에 설치돼 있어서 또 다른 감상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물론 크기가 작은 조각들도 있다. 그래도 사람만한 크기. 시를 보면 공간에 부양하듯 불안정한 모습으로 서 있는 작품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기에 움직임이는 느낌을 주고 동시에 좋은 긴장감을 안겨준다. 그래서 감상자 입장에서는 공간에서 입체적으로 작품을 바라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작품과 작품 사이에서 함께 존재하는 느낌도 받을 수 있다.
전시 구성
전시는 6개의 테마로 구성된다. Exploration(탐구: 예술의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 Language(언어: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 도구, 글자), Ordinariness(보통 : 일상을 보는 낯선 시선), Play(놀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예술적 유희), Fragment(경계: 축약으로 건네는 상상력의 확장), Combination(결합: 익숙하지 않은 관계가 주는 연관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Exploration’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Exploration’에서는 작품을 통해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이 예술을 통해 추구하고자 했던 것들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사물을 에술적으로 이해하는 그의 시선, 예술을 새롭게 하는 시도, 작품을 만드는 새로운 방식까지 그가 평생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작품 세계의 여정을 가볍게나마 들여다볼 수 있다.
미술사적 의의나 작가의 의도를 떠나 보는 재미가 있는 전시이다. 매우 대비되는 색감으로 표현해 놓은 작품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성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형 작품들이 즐비해서 시각적 만족감도 크다. 물론 여기에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 크게 보면 다르게 볼 수 있다. 쉽게 지나치는 것들의 아주 작거나 숨겨진 부분들을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를 관람하며 하나 기억할 것은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이 보여주고 한 주제 의식이다. 그는 일상의 사물이 가진 이미지를 자신의 해석을 그치지 않은 채, ‘그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가 검은색 테이프로 작품의 윤곽을 붙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그것은 관객이 받아들여야 할 몫이다. 하나의 작품이 관객에게 서로 다르게 인식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 전시가 훨씬 생동감 있다. (마이클 크레이크 공식 홈페이지)
현대미술의 산 증인 – 그의 인터뷰와 함께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은 영국의 젊은 예술가(yBa)들을 양성한 스승이자 현대 미술의 대부로 칭송받고 있다.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의 예술세계를 총망라하는 이 전시는 개념미술과 설치미술, 그리고 새로운 회화의 방식으로 끊임없는 예술적 시도를 되돌아볼 수 있다. 1947년생으로 다채로운 현대미술이 태동하던 20세기를 살아온 그였기에 현대미술을 더욱 현실감 있게 경험할 수 있다.
함께 읽을 글
이 글은 브런치 ‘김바솔’로 발행했던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전시 리뷰이다.
오랫동안 브런치 ‘김바솔’을 운영해 왔다.
전시 기간: 2022년 4월 8일~2022년 8월 28일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