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나의 이야기다. 그리고 내가 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던 이야기이자, 내가 철학을 통해 나를 찾고 내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비록 나의 삶과 나의 철학적 생각이 그리 대단한 건 아니지만, 자신과 자기의 삶을 찾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라며, 나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추후 서양철학과 엮어 책으로 출간할 계획이다. 많은 관심 부탁 드리며.)
내가 사는 이 ‘세계’는 어떤 곳일까?
누구나 내가 사는 이 ‘세계’에 알고 싶어하고 이에 대해 배운다. 그것은 내가 사는 현실이기도 하고, 내가 만든 상상이기도 하며, 내게 주어진 특정 공간이기도 하다. 철학적인 의미에서의 ‘세계’는 지리적 의미에서의 세계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고 있는 ‘물리적 공간’이자 ‘의미있는 공간’을 가리킨다. 그래서 이 질문은 나에게 있어 이 세계가 주는 의미의 발견인 동시에 이 세계에 대한 지식을 형성하는 일과도 연관되어 있다.
‘세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내가 살아가는 삶의 공간에 대한 조망’이다. 삶의 공간을 어떻게 조망하고 있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그 삶의 공간이란 현재의 주거지나 학교나 직장 같이 매일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실제의 공간이기도 하고, 역사 문화 경제 사회 정치 수학 과학 예술 종교와 같이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인식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실제의 공간과 인식의 공간에 대한 파악이 곧 세계에 대한 인간 이해에 해당한다.
너희 집 주소가 어디니? 라고 물을 때, 우리집 주소는 태양계 지구 대한민국 어디 어디에요, 라고 대답한다. 바로 이곳, 인간이 직접 살아가며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곧 ‘물리적 공간’이다. 지구나 우주와 같이 직접 경험할 수 없으나 존재하는 조금 더 큰 범위의 공간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공간이기도 하고 인간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성된 물리적 세계이기도 하다. 또한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이 ‘세계’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그 구조와 특성을 파악하여, 이에 대한 ‘앎’을 갖는다.
이 ‘세계’에서 인간은 삶을 영위한다. 물론 이 ‘세계’가 갖는 범위와 지식은 인간의 문명 발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과거에 ‘세계’에 대한 지식을 형성하는 역할은 철학이 담당했지만 이제는 물리학, 지리학, 생물학, 사회학, 심리학, 의학 등등의 분과 학문이 담당하고 있다. 오늘날 철학은 그 본래의 역할인 본질적인 차원에서의 문제 제기와 이러한 학문들이 제공하는 지식을 원론적인 수준에서 검토하는 일에 한정되어 있다. 다만, 이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은 철학의 몫이기도 하다.
인간에게 더 중요한 건 인식의 공간
이러한 실제의 공간과 함께 인간에게 중요한 공간이 ‘인식의 공간’이다. ‘내가 살아가는 공간’, 다시 말해, 집 또는 학교나 회사 나아가 사회나 국가에 대해 가지는 감정이나 생각이 곧 인식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같은 집을 두고도 어떤 가족 구성원에게는 따뜻한 공간이 될 수 있고, 어떤 구성원에게는 차가운 공간이 될 수도 있다. 학교, 회사, 사회, 국가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구조에 따라, 그 구성원에 따라, 한 인간의 해석과 이해 방식에 따라 그 공간에 대한 인식은 매우 달라질 수 있다.
이 인식의 공간 중 하나가 ‘삶의 의미’로서의 ‘세계’이다. 인간은 누구나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라는 물음에 직면하고,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에 대해 면밀히 살피기 마련이다. 그러면서 내가 처한 한계 상황을 인식하고, 이 속에서 내가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해 본다. 나를 둘러싼 삶의 조건은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더 잘 안다면 더 나은 선택을 보장받을 수도 있다.
이처럼 세계’는 하나의 지식으로서 그 면모가 드러나기도 하고, 한 인간이 가진 삶의 의미로 재구성되기도 한다. 한 사람에게 ‘세계’가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느냐에 따라, 인간이 밝혀낸 지식으로 ‘세계’를 얼마만큼 이해하느냐에 따라, 인간이 인식하고 체감하는 ‘세계’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세계’에서 각자가 원하는 삶의 방식을 고민하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삶의 희망을 찾아내어, 더 잘 살기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곧 ‘세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가진 중요한 역할이다.
이곳에서 인간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거나 노동을 투입하고, 또한 바꾸고자 하는 의지와 자신만의 목표를 가지며, 그리고 이를 위해 헌신할 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세계’는 물리적 공간이자 인식의 공간이며, 의미의 공간이자 상상의 공간이기도 하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이다. 다만, 그 가능성은 이를 현실로 만들려는 인간의 활동이 투입되어야 가능하다. 결국 ‘세계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어떤 세계를 만들까’ 하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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