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나의 이야기다. 그리고 내가 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던 이야기이자, 내가 철학을 통해 나를 찾고 내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비록 나의 삶과 나의 철학적 생각이 그리 대단한 건 아니지만, 자신과 자기의 삶을 찾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라며, 나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추후 서양철학과 엮어 책으로 출간할 계획이다. 많은 관심 부탁 드리며.)
무엇을 두고 ‘잘 산다’ 할 수 있을까
살아가며 누구나 한 번쯤 물을 때가 있다. ‘사는 게 뭘까?’ 사는 게 뭐냐 묻는 건 인생 앞에서의 무력한 한탄이기도 하고,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 또는 목적을 묻는 것이기도 하다. 세상 일이 뜻대로 된다거나, 내가 무엇을 실현하며 살아가야 할지를 안다면 사는 게 무언지 물을 필요가 없다. 그냥 그대로 살아가면 충분하니까. 그렇지만 인간은 스스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도 오롯이 져야 한다. 단 한 번 주어진 인생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사람들은 ‘잘’ 살고 싶어하고 의미있게 살다 가고자 한다.
잘 살기 위해 인간은 세상에 적응하고, 세상을 자기에 맞게 변형시킨다. 또한 각자의 한계(타고난 성격이나 신체 조건, 가족이나 국가와 같은 주변 환경)를 극복하며 살아가려 노력하고 그에 따른 성공과 실패, 환희와 좌절을 경험한다. 이런 결과들을 종합하여 ‘잘 산다’ 또는 ‘못 산다’ 라고 평가한다. 그런데 ‘잘 산다’ 할 때의 ‘잘’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가장 좋은 상태’를 의미한다. 이 가장 좋은 상태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객관적 기준이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누구나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이다.
만일 상대적 기준에 따라 잘 사는 것을 평가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은 개인적 가치의 실현이다. 어떤 사람은 돈을 벌어 떵떵거리는 것을 잘 산다 여기고, 어떤 사람은 잘 살기 위해 창작의 고통을 즐기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정말 많은 것들을 이루어도 잘 살았다 생각지 않고, 어떤 사람은 특별히 이루는 것 없이도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나쁜짓을 하고도 죄책감이 없고 어떤 사람들은 작은 일에도 양심을 지킨다. 이렇게 사람들마다 자신의 생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도, 그 목표를 이루는 정도도, 그에 대한 만족도 -삶에 대한 태도까지- 역시 다르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잘 살기 위해서는 보편 타당한 가치를 따라야 한다고 본다. 앞에서도 보았지만 각 개인이 자신의 주관적인 욕망을 추구하다 보면 갈등과 경쟁이 발생하고 지나치면 투쟁과 폭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몇몇 사람들이 도덕을 저버리고 산다 해서 너도 나도 그렇게 산다면 인간 사회가 동물의 세계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비록 모두를 만족시키긴 어렵고 절대적 기준을 세울 수 없다 하더라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조건들은 있다. 잘 산다는 건 그래서 나와 타인, 그리고 공동체라는 범주까지 고려해야 하기에 매우 복잡한 셈법이 요구된다.
결국 자기다운 모습으로 살아가야
무엇보다 가장 자기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때 인간은 보람을 얻고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도덕도 좋고 욕망도 좋으나 자기답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잘 사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자기가 누구인지 알아야 자기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알게 되고 자기에게 맞는, 자기가 원하는 일을 찾아 그것에 매진해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내 삶이 진정 내가 원하던 모습이었는지 의심이 드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만족스럽진 않으나 이 정도면 충분하다며, 자신을 다독이고 살아왔을 수도 있다. 아니면 이런 고민 따위 중요하지 않다며 즐겁게 오늘을 살아왔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자기다운 모습은 어쩌면 그 자기다운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지불할 수 있는 비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대개 많은 사람들은 뭘 해야 생존하고, 뭘 해야 남부럽지 않게 살고, 뭘 해야 남보다 더 낫게 살 수 있을지, 그러한 질문들을 해왔을지 모른다. 내가 누구인지, 세계란 무엇인지 고민하느니 이 길이 더 빠르고 편하게 사는 지름길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 모두가 바라는 것을 바란다 해서 그것이 꼭 자기답게 사는 것은 아니다. 자신만의 목적을 갖고 이를 실현해가는 삶이 더 낫다는 것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를 찾는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내가 원하는 나와 만나는 일이다. 내가 원하는 나란 ‘나다운 나’이거나 내가 생각하는 ‘멋진 나’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내가 갖고 싶은 성격이나 감성을 가진 그런 나이다. 물론 현실에서 그런 나를 만나는 것은 어렵다. 부자나 예술가나 가능한 것처럼 보이고 나는 예외인 것 같다. 그래서 보통은 차선을 선택한다. 갖고 싶은 걸 덜 갖거나 하고 싶은 걸 덜하며 적정선을 맞춰나간다. 그럼에도 자아찾기를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곧 나에게 진정 살아갈 이유와 살아갈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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