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철학자는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사람

철학자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일이 직업인 사람이다. 내가 누구인지, 사는 게 무엇인지, 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왜 죽어야 하는지, 왜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지, 정의란 무엇인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질문은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을 하는 것은 꽤 피곤한 일이나 그것을 감수하는 까닭은 더 나은 해답을 얻기 위해서이다. 철학자들은 그렇게 어떤 철학적 문제에 대한 ‘조금이나마’ 더 나은 해답을 위해 평생을 바친다.

그리스에서는 철학자를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불렀다. 지혜로운 사람이 아닌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했던 이유는 ‘사랑’이 갖는 의미에 있다. 사랑은 사랑의 대상이 있기 마련인데, 지혜가 그 사랑의 대상이고 지혜는 고갈되지 않고 평생을 추구해도 다 가질 수 없을 만큼 무한하다. 그 무한한 부피의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자는, 그래서 죽을 때까지 지혜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에 있어 만족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 나왔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은 델포이의 아테네 신전의 기둥에 있던 말이다. 소크라테스의 친구 카이레폰이 그리스에서 가장 현명한 이가 누구냐 물었을 대 얻은 신탁이다. 이 말을 전해들은 소크라테스는 처음에는 의아했으나 곧 이것이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의미임을 깨달았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수많은 현자들과 대화하며 얻은 결론은 그들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고 그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모른다는 것을 아는 사람, 지혜에 대한 갈망이 있는 사람, 그가 철학자이다.

소크라테스가 유명해진 것은 그의 제자 플라톤에 의해서이다. 플라톤의 저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사람이 소크라테스이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소크라테스는 문답법에 의거한 산파술로 상대의 주장이 갖는 허점과 오류를 발견하고 올바른 진리로 나아가기 위해 애썼다. 물론 그래서 죽임을 당했다. 아무리 진리를 찾는다는 명목이 훌륭하더라도 상대에 면박을 주고 자신이 바보가 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물론 소크라테스의 잘못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참일 수 있기를

특히 철학자들은 여기에서도 맞고, 저기에서도 맞고, 과거에도 맞고, 미래에도 맞아야 하니 더욱 포괄적이고 더욱 심도 있는 사고를 추구한다. 나에게만 답이 된다면 그것을 진리라 부를 수 없기에. 시간과 장소 불문하고 언제나 진리가 될 수 있는 사실을 ‘보편성’이라 부르는데, 철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조건 중 하나이다.여기에 수없이 많은 생각들을 하나의 개념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더욱 함축적이고 압축적인 개념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가령,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한다면, 철학자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정의(正義, justice)’에 대해 ‘정의(定義, definition)’하는 일이다. 그것도 논리적으로, 주장과 근거를 갖추어, 매우 타당하게 그 뜻을 밝힌다. 그런 후에, 왜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는지, 어떻게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지 묻고 또 묻는다. 어떤 사람은 왜 정의를 실현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지, 마찬가지로 어떤 나라에서는 그렇고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은지를 따져 보며 말이다.

이처럼 보통 사람보다 수십 배는 사고하고, 수십 번은 고민해 내린 결론, 그리고 결론을 내리더라도 이것이 절대적이지는 않다는 태도, 여기에 타인을 설득해야 하는 부담에 이르기까지, 철학자의 노고는 생각보다 크다. 이런데도 철학이 쉽다면 그것은 철학이 아닐 수도 있다. 세상에 쉬운 철학은 없다. 이러한 조건들을 다 충족시키다 보니 철학자들은 다른 별에 사는 사람처럼 느껴지고, 쉬운 말들을 어렵게 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그들도 처음부터 의도하진 않았겠지.

인간의 삶엔 ‘생존’의 문제와 ‘의미’의 문제가 놓여 있는데, 철학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후자에 무게감을 둔다(물론 철학적으로 그렇단 의미이다).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고 의미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한데, 사람에 따라서는 그 무게감이 달라지기도 한다. 절대적으로 무엇이 더 소중하다고 말할 순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더 이상 철학이 내 삶에 의미를 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철학자로서 평생을 살겠다는 나의 결단도 무의미해지고 말았다.

물론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살다 보면 그 인생의 무게가 바뀌기도 하기에. 그것이 삶의 아이러니다. 인간은 여러 선택을 하고 그 선택마다 많은 의미를 따져 묻는다. 물론 이미 선택을 했다면 의미 쯤이야, 하며 의미 두기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자신이 그만 둔 것을 다시 시작하기도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후로 나는 철학책 두 권을 썼고, 또 새로운 철학잭을 기획하고 집필하는 중이다. 철학에 대한 나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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