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대한민국을 한 마디로 이렇게 정의하고자 한다. 모든 삶의 기준은 욕망이고 가치의 잣대는 주관이다. 내 욕망과 내 주관 앞에 걸릴 것이 없다. 도덕? 법? 그 따위 것들이 무슨 소용인가. 내가 좋으면 그만이고 내가 기분 나쁘면 그만이다. 왜 내가 내 앞의 누군가를 고려하고 이해해야 하는가. ‘내’가 중요하고 ’내 맘‘이 더 중요한데.
현대사회에서 욕망 충족은 그 무엇보다 앞서 있고 정당하다. 내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고, 그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힘(권력이든 재력이든 무엇이든)이 있다면, 그래서 욕망이 충족될 수 있다면 그걸 두고 뭐라 할 사람이 없다. 그렇게 해도 되고 그걸 부러워하고 그렇게 되고 싶은 사람들 천지이니까. 이는 모든 이들의 마음이 만들어낸 현상이다.
아파트 가격이 수 억 오르기를 기도하고 내 아이가 남보다 잘나거나 최소한 못나지 않기를 바라며, 여기에 더해 아파트 가격을 올리기 위해 온갖 편법을 동원하고, 아이를 엘리트로 키위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이미 어릴 때부터 아이들은 그것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반대로 그것을 당연시하며 나아가 그것을 권력으로 여긴다.
무엇보다 ‘안전’하기를 바란다. 안전은 위험으로부터의 도피이다. 그 위험에는 흔히 말히는 실제적 위험뿐만 아니라 잠재적 위험도 포함되어 있다. 진정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픔도 슬픔도 괴로움도 분노도 겪고 싶지 않다. 불안전한 것들은 ‘나의 세계’에서 있어서는 안 되고 일어나기 전에 없애버려야 할 대상이다.
‘안전’이란 ‘나만 아니면 괜찮다’는 마음 그 자체이다. 여기에 나의 안전을 위협하는(’위협’이란 단어도 너무 과하다. 그저 나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아야 하고 신경을 거슬리게 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들은 제거의 대상이자 분리의 대상이다. 나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어야 한다. 수많은 ‘캐슬’과 ‘팰리스’가 등장한 까닭도 일정 부분 여기에 기대 있다.
지극한 주관 – 막무가내식 고집
오늘날의 ‘주관’은 객관을 배제한 ‘지극한 주관’이다. ‘객관’을 상실했기에 더이상 객관적인 기준은 사라졌다. 차라리 ‘내 맘대로’라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주관이란 주체성이 아니다. ‘주체성’이란 자기주도적이고 자기 주관이 뚜렷하단 의미이다. 남따라 자기 의견을 수시로 바꾸는 귀 얇은 사람도 아니고 이해에 따라 자기 신념을 바꾸는 것도 아니다.
‘객관’이란 말은 최소한 타인을 고려한다는 의미지만 지극한 주관엔 오직 ‘나 뿐’이다. ‘내 맘인데 니가 왜?!’ 이것이 통용되는 사회이다. 아무런 제재도 없다. 내 맘이면 상대의 마음도 중요치 않다. 내 맘이 먼저니까. 나의 욕망이 끝나지 않으면 끝나지 않고 사랑도 상대의 마음과는 별개이다. 경쟁 상대는 없애면 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치면 그만이다.
그래도 안 되면 법으로 해결하거나 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더욱이 범죄자들은 더이상 죄를 뉘우치지 않고(법으로 모면하거나 비켜가고, 죗값보다 적은 죗값을 치르거나 죗값만 치르면 그만이니), 폭력이 난무하고 사람의 목숨은 아무렇지 않다. 책임 지는 사람은 없고 책임을 회피하거나 전가하는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진다.
혐오와 배제 – 폭력적인 사회
혐오와 배제, 폭력과 조롱은 이런 시대가 낳은 건 괴물이다. 이 시대의 괴물은 수십 년에 걸친 이러한 욕망과 주관이 낳은 결과이다. 한 교사가 학교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저 학부모들의 지나친 민원 때문에? 학생들의 괴롭힘 때문에? 물론 그것도 포함되지만, 그보다 그런 행동들이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는 이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이 사건을 통해 한국 사회가 가진 문제를 여실히 들여다볼 수 있다. 개인의 도덕성이 곧 사회의 도덕성으로 확대되고, 사회의 도덕성이 다시 개인의 도덕성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시대가 그러하니 어쩔 수 없는 것도 있지만 나 역시 그런 사회를 만든 장본인 중 하나가 아닌지. 물론 이런 생각을 하는 건 괴로운 일이나 그 괴로움에서 삶은 새로워질 수 있기에.
한 아이가 한 사람으로 훌륭하게 성장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며.
쇼츠로 만들어보았다.
7월, 교사들의 자발적 집회가 있었다. (전교조도 아니고 한국교총의 주최가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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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주관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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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한민국을 욕망과 주관이라는 두 개념으로 살펴보았다. 서이초 교사의 죽음은 바로 이 '욕망과 주관의 시대'가 나은 결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