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나의 시간. 내가 만들어온 시간이다. 삶의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쏟은 많은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 위에 서 있다. 내 지분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 긴 시간이었다. 지금까지는 다른 이들이 만들어놓은 시간이었다면, 지금부터의 시간은 내가 만드는 것이다.
주어진 것들이 아닌 스스로 만든 땅 위에 서 있는 느낌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다. 사회적 성공으로 따질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 이것은 한 인간이 자신에 대해 갖는 뿌듯함이기에. 다만 경계해야 할 것은 비록 내 지분이 많다고 해서 자만하거나 오만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애를 쓸 수밖에 없다. 사실 무언가를 이루는 것을 저어하는 노자를 전공했던 사람으로서, 노자와는 반대되는 행보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노자는 애써 무언가를 이루기보다 자연스레 무언가가 이루어지게 만드는 것이 최상이라 여겼다. 너무 애쓰다 오히려 망친다는 의미이다.
그런 노자도 글을 남겼다. <도덕경>이라는 이름의 책. 고대인이기에 말을 남겼고 그것을 누군가 대신 편집했을 가능성도 높지만, 그런 고차원의 정신 세계 역시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루고 난 뒤에 돌아보는 세계와 이루지 않은 채 내려보는 듯한 세계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런데 그것 역시 이루는 것이기는 마찬가지이다. 다만, 억지로 무언가를 조작하거나 거짓으로 무언가를 내세우지 않기에 그 이룸은 오래 가고 단단하다. 이를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균형있게 이룬 것이니까. 진실하다고도 표현할 수 있겠지.
그만큼 진정성있게 노력해 나가야 한다. ‘사이비’라는 말이 있다. ‘비슷하나 같진 않다’는 의미이다. 아마 이런 뜻인줄 모르고 썼던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같진 않은데 비슷한 걸로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일을 두고 보통 ‘사이비’라 부르니까.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사이비는 되지 않아야 한다.
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상태는 가장 자기다운 모습을 찾는 일이라 본다. ‘자기다운 모습’은 사람마다 다르다. 무엇보다 자기다운 모습을 찾는 일도 어렵고 그것에 도달하는 일도 어렵다. 지금부터의 인생을 내 모습으로 살 수 있다는 것만큼 운 좋은 일이 있을까.
다행스럽게 요즘 들어서 난 나답게 살아가는 중이다. 나 처럼이 아니라 내가 되어 살고 있다. 이제야 나를 이해하고, 그래서 나의 길을 찾은 느낌이다. 그동안의 수많은 고민들이 모두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한 데에서 비롯됐다는 걸 깨닫고는 한편으론 재미있고 한편으론 허탈했다.
조금 더 일찍 알아차렸다면 좋았겠지만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라 여긴다. 인생이 어디 맘대로 되는 것이 어디 있던가. 알았으니 다행이고 알았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이고 대단한 일인가. ‘나’로서 살아갈 수 있는 이 행운을 맘껏 누리고 또 그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커다란 저 빙벽 너머로 나의 겨울이 오고 있다.




